코스모스가 더 유명하다고는 한데 이 책이 더 궁금해서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타래 작성일 :
인간의 존재를 지구와 달 사이의 지점에서 느끼기에는 우리 인간이 너무나 미소하고 그 능력은 너무나 미약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조망할 때 인간간의 국가주의적 집념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아폴로의 지구 사진은 천문학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즉 행성들의 크기 - 별이나 은하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 에 비하면 인간들이란 하찮은 존재이며 암석이나 금속으로 이루어진 보잘것없는 하나의 고체덩어리에 붙어 사는 생물의 얇은 막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의 무대 속에서 하나의 극히 작은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남보다 명백한 - 심지어 천부의 -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아첨을 뿌리치려면 적잖은 인격이 필요하다. 자존심이 경망할수록 우리는 이런 아첨에 굴복하기 쉬운 것이다.
거의 언제나 전제되는 가정은 우리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우리가 그렇지 않다 - 낙심할 정도로 많은 경우 - 는 사실이 판명된다.
우리 인간은 특권을 몹시 탐내는 것 같다. 그것도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우리의 출생, 이를테면 우리가 인간이고 지구 위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실만으로, 우리는 그것을 인간중심적과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늦게 등장한 생물이다. 우리는 우주의 시간에서 마지막 순간에 나타났다. 우리 인류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에 오늘날까지의 우주시간의 99.998퍼센트가 흘렀으니 말이다. 이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행성, 그 위에 사는 생물, 그리고 그 외의 어느것에 대해서도 어떤 책임을 질 수 없었다.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만하게도 스스로를 신의 개입이 필요할 값어치가 있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다.> 아마도 다른 세계의 생명이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인공이 없을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든, 우리가 겸허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59p. 우주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65p. 인간의 자부심은 우주가 인간에게 안성맞ㅊ품이라야 한다고 바랄정도로 형편없는 것일까?
74p. 엄청난 결론 - 우주는 훨씬 더 크고 더 오래도었으며, 인간의 개인적 혹은 역사적 경험은 이에 비하여 너무나 왜소하고 하찮으며, 날마다 많은 태양들이 태어나고 어떤 세계들은 사라져 가고, 인간은 최근에 우주에 태어나서 하나의 보잘것없는 흙덩어리에 붙어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 을 얻어낸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우리 인간은 영원히 무식쟁이로는 행복하게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
75p. <우리>는 생명의 의미를 관리하는 자이다. 우리는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고,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우리가 저지른 유치한 실수로부터 우리를 구해주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지식은 무지보다 낫다. 힘든 진리는 마음을 달래주는 거짓말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그래도 우주의 목적을 갈망한다면, 우리 스스로 보람 있는 목적을 찾아나서자.

우리는 애초부터 방랑자였다.
이를테면 우리는 방랑자들 사이를 방랑한 셈이다.
오로지 감정이 없는 정확한 로봇이 숫자로 표현된 신호를 광속으로 보내올 따름이다. 그 소식에 의하면 이 새로운 세계들은 우리 지구와 그다지 닮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곳의 주민들을 계속 찾아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은 다른 생명을 찾기 때문이다.